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하지 못하는 존재인데, 그 모습을 ‘찍는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촬영한 것은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빛이 휘어지고 빨려 들어가며 만들어진 ‘그림자(Shadow)’이다. 이 그림자를 포착한 프로젝트가 바로 EHT(Event Horizon Telescope), 즉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이다. 2019년 공개된 M87*의 오렌지색 도넛 구조는 “우주에서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던 것”을 실제 관측으로 가져온, 천문학 역사에서 손꼽히는 대사건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카메라로 찍은 거야?”, “망원경 하나가 그렇게 대단했나?”라고 오해한다. 사실 이 이미지는 단일 장비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지구 크기만 한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어 얻어낸 초장기선 간섭계(VLBI) 기술의 결과물이다. 즉, 실물이 있는 카메라가 아니라, 지구 곳곳에 흩어진 전파망원경 수십 대가 시간과 위치를 정밀하게 일치시키며 만든 ‘하나의 거대한 관측 기구’로 찍은 셈이다.
EHT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블랙홀 그림자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M87*는 태양 질량의 약 65억 배라는 초대질량 블랙홀이지만, 5천만 광년 떨어져 있어 하늘에서 보이는 실제 각도는 마치 달 위에 놓인 야구공보다도 작다. 이 정도 해상도를 얻으려면 이론적으로 지구 지름만 한 망원경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런 망원경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전 세계의 전파 관측소를 하나의 기기로 묶는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 바로 VLBI(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다. VLBI는 여러 관측소가 동일한 천체에서 오는 전파 신호를 정확히 동일한 타이밍에 기록하고, 이를 나중에 하나로 합성해 마치 거대한 망원경으로 찍은 것과 유사한 해상도를 얻는 기술이다. 관측소 간의 ‘시간 동기화’는 원자시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때문에 기록되는 데이터의 양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커서 인터넷으로 보낼 수도 없다. 실제로 EHT 관측 데이터는 비행기로 운반되는 하드디스크에 담겨 모여진 뒤, 하나의 슈퍼컴퓨터에서 정밀한 상관 처리 과정을 거쳐 이미지가 재구성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 도넛 모양 이미지는 과학자가 원하는 대로 만든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 관측 결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제 이미지지만,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복잡한 계산·보정·재구성 과정을 거쳐 완성된 ‘과학적 이미지’에 가깝다. 전파 신호는 가시광선과 달리 카메라 센서에 대응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원시(raw) 데이터에서는 직접적인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진은 전파가 들어오는 위상과 세기를 분석해 가능한 이미지의 후보들을 만들고, 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구조만 남겨 최종 이미지를 확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과정은 사진 편집이 아니라 수학적·물리적 제약조건을 만족시키며 ‘관측 가능한 형태만 남기는 복잡한 역문제(inverse problem)’에 가깝다. 쉽게 말해 “이런 전파 신호가 관측되었다면, 그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블랙홀 주변 구조는 무엇인가?”를 거꾸로 계산하는 행위다. 그래서 EHT가 공개한 이미지는 예술적 감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관측 데이터가 허용하는 가장 정확한 형태로 압축한 결과다.
EHT가 촬영한 M87* 이미지의 중요한 장면은 바로 중심의 어두운 부분 ‘그림자’와, 그 주위를 ‘비대칭적으로’ 감싸는 밝은 고리다. 그림자는 말 그대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내부로 떨어지는 빛이 더 이상 외부로 나오지 못해 생기는 영역이고, 그 주위의 밝은 부분은 **강착원반(accretion disk)**과 중력렌즈 효과를 통해 다시 굽어 들어오는 빛이 겹치면서 발생한 것이다. 특히 고리의 한쪽이 더 밝아 보이는 이유는, 강착원반의 가스가 회전하면서 상대론적 도플러 효과에 의해 관측자 쪽으로 다가오는 측면의 빛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 비대칭 패턴은 실제 블랙홀의 회전 여부와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즉, 저 도넛 모양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블랙홀의 크기·질량·회전 속도·강착원반의 구조·가스의 온도 및 밀도 등을 모두 반영한 ‘우주 물리학 요약본’ 같은 이미지다. 작은 픽셀 하나에도 수백만 개의 수식과 관측 기록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EHT는 더 많은 관측소를 추가하고, 더 짧은 파장의 전파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중이다. 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블랙홀 그림자의 해상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고, 도넛 모양이 아니라 동적으로 변화하는 영상, 즉 “블랙홀 영화(Black Hole Movie)”도 기록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미 Sgr A*(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에서 시간에 따라 흔들리는 영상 프레임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블랙홀의 성장, 고리의 변동, 제트 분출의 시작 같은 장면을 실시간에 가깝게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블랙홀 연구는 단순한 이미지 관측을 넘어, 진짜로 하나의 살아 있는 천체를 ‘관찰’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블랙홀 이미지는 이미 한 번 인류의 우주 관을 바꿔놓았고, 다음 단계에서는 우리가 “시공간이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더 가까운 답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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